윤산 강행원 그림방 강좌

                           우리 그림에 대한 이론과 실기

* 한국화란?                   * 동양과 서양의 흐름                  * 재료와 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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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란?

한국화는 중국의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의 영향을 크게 입었으며 회화의 정신은 유교(儒敎)나 도가사상(道家思想)·불교(佛敎)의 영향을 받아 발전되어 왔다. 약 15세기를 거쳐오는 동안 우리의 회화 양식이 형성되어 그 맥락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동양화란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해 졌던 것은 36년간의 일제 식민 통치가 낳은 잔재인 것이다. 일제는 우리민족을 무력 정책으로 다스려 왔으나 그 강압에 대한 저항에 부딪쳐 무력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게 되자 다시 조선문화 말살을 다른 방법으로 기도 획책하였다. 그 일환으로 간교한 유화정책을 내 놓고 약칭 선전(鮮展)이라고 하는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를 만들어  문화 회유책을 썼다.

명분은 자신들의 강제 정책을 접고 조선문화를 인정하며 장려한다는 고도의 지능전술인 셈이다. 바로 그 함정은 이 전람회에 출품 할 회화장르의 명칭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그것은 조선화라는 장르의 이름을 그대로 쓰도록 수용한다면 조선사람들의 민족의식(民族意識)을 더욱 고취시키는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고유한 회화장르의 이름부터 말살하여 자신들의 회화문화에 동화를 꽤하기 위한 일차적인 그 흉계가 조선화란 이름 대신 동양화란 이름을 붙여 이 땅의 작가들을 불려 드렸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를 살다 간 선배작가들은 아무런 의식도 없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냥 받아들이고 참여하여 그들의 회유책에 놀아나는 아픔을 남겼다.

하지만 그 이후 해방이 되어서도 동양화란 이 용어는 아무런 찬반의 논란도 없이 그냥 이여 져 지금까지 마치 우리 것처럼 불러 왔다. 그리고 아직 까지 교육의 전당인 대학의 학과 이름에서조차 때지 못하고 서양의 반대 개념으로 쓰고있는 무관심 한 처지에 있다. 그러나 북녘에서는 광복이후 바로 조선화로 회복하여 주체성을 살려 왔으나 남녘 미술인들은 70년대 후반에서야 해방 40년을 눈앞에 두고 변화를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해방 이후에 입은 한국전쟁의 상처를 딛고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루게 되면서 얻은 여유이다. 뒤늦은 일이지만 일제 강점기에 지워졌던 우리문화를 되찾기 위해 일제하의 한국미술을 청산하자는 문화운동을 펴면서 동양화를 한국화로 개칭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화의 탄생은 일본화의 대칭으로 부르게 된 새로운 이름이며 미술사적인 공인의 시작은 1981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부터 쓰게 된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1500년을 이어온 우리민족 고유의 회화양식의 이름이 거의 한 세기 동안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일제에 말살된 깊은 잠에서 깨어나 다시 새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남북 분단이 낳은 이데올로기에 걸려 북은 조선화로 남은 한국화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한국화(조선화) 속에서 현대적으로는 수묵화와 채색화로 대별되며 전통적으로는 산수·인물·풍속·화조·문인화(사군자)로 세분화되어진다.

우리의 회화 문화에 대한 고유한 장르의 이름이 이렇게 일제의 강점기에 의해 훼손되어지는 어줍잖은 한 시기를 통해서 남겨진 이름이 동양화였음을 새삼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 볼 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서 우리들은 친일 작가의 속성을 아직도 역사적인 단죄에 대한 최소한의 실마리도 아직 명쾌하게 해결 짓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화단의 뜨뜨미지한 미술인들의 의식이다.

한국화는 분단국이 낳은 이름이므로 통일 국가가 되면 또 다른 이름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반쪽 땅의 아픔을 극복하는 지혜가 모아져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화라는 말은 북쪽의 조선화를 고려하지 않고 만든 분단사의 산물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한국화나 동서양화 등의 분류법과 명칭은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동 서양화 역시 그 개념은 일제의 식민지 시대에 일본을 주축으로 한 범 아시아 식민지 문화권 형성의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림의 재료에 따라 분류되는 것이 식민역사의 불행한 오명도 없애는 것이며, 또한 범세계적인 회화의 탈 장르에 대한 시대적인 요청에도 부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이다. 수채·묵채 또는 채묵·유채·아크릴닉·판화·조소 등 추상성에 대해서는 1과 2로 구분하여 수채2부·유채2부 등의 부를 정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것은 물론 미술인 집단에서 공론화 되어야 하는 것이고 또한 공청회를 거쳐야 될 문제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 많은 생각과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동시에 우리그림에 대한 미학적 이론체계의 확립도 함께 논구 되어 글로벌 시대의 한 획으로 자리 메김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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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흐름

 회화의 시작은 우리 인류가 시작되는 선사시대 동굴 벽화에 나타난 동물의 표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동양과 서양회화에 대하여 그 흐름과 차이점은 이념에서부터 크게 다르다. 또한 그 미적 표현과 감흥 그리고 이념적 활용도에 있어서도 서양회화의 철학적 구체 인식에 대한 역사는 동양회화의 역사에 미치지 못한다.

동양의 고대 회화역사의 철학적 배경에 대한 그 이론적 시기를  위진(魏晋)의 현학(玄學)으로부터 잡는다 하더라도 예술에 대한 진정한 자각이 서양에 비해 일천여년 이상이나 앞서 있다. 서양은 그 기원역사를 15세기경의 르네상스시대로부터 잡고 있으나 사실상 철학적 배경에 대한 작품세계의 진정한 미학적(美學的) 의미를 갖게된 것은 16세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역사적 실체에 대한 유구성(悠久性)의 존엄이야말로 서구 예술사조와는 비견할 수 없지만 오늘의 현실은 사뭇 다르기만 하다. 그것은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서구주의 잣대로 동양의 문화를 재단하려는 풍조가 만연된 문화로 가치관이 바꿔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교육환경에서부터 작가의 의식세계가 서구중심으로 기울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동양회화의 철학사상에 대한 이론적 배경체계는 서구 중심으로 공부해온 사람들에게는 미학이란 말로 전제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되고 있다. 그것은 동양미학이 문서상(文書上)에 의해 미학이란말로 체계 되거나 확립된 기록의 흐름에 대한 맥락이 뚜렷이 미학이라고 못박아 논 기초 학이 없다는데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찾아보면 서양미학은 그 출발 자체가 너무 늦어있기 때문에 그 사상적인 이념을 동양의 철학적 배경과 왈가왈부 할 일이 아니다. 유교나 불교 또는 노장 사상을 기초한 동양철학의 회화예술의 이론 속에 이미 그 근원적인 요소가 다 포함되어 있는 한 부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점이 있다면 물질주의적인 과학적 입장과 정신주의적인 암시적 입장이 서로 다를 뿐이다.  

르네상스를 기초로 18세기 이후에 서양 철학자들은 미학이란 이름을 걸고 미학에 대한 분석 철학을 연구하여 학문적으로 체계를 세웠다. 이러한 짧은 역사 속에서 오늘날 서양문화가 전세계를 지배한 탓에 동양철학의 회화이론에 대한 학문적 가치와 예술적 존재가 그들의 베일 속에서 빛을 잃은 채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장사상(老莊思想)이나 공자의 후소회사(後素繪事) 또는 불교의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사상과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만유제변론(萬有諸變論) 같은 것은 동양미학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학문에 뜻을 두고 연구하는 동양인들 역시 서구문화의 범주에서만이 학문적 가치를 더 인정받기 때문에 그렇게 흘러가게 된 점이다. 그래서 더욱 동양미학은 그 어휘에 대한 이름조차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지금은 동양미학도 만만치 않게 출간되고 있다.

이러한 오늘날의 세태는 동서 회화에 있어서 그 이념 차이가 과거에서처럼 큰 대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구문화에 많이 동화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그 본디의 다른 점을 말하자면 서양인의 감정은 즉물적(卽物的)이며 과학적인 반면에 동양인의 감정은 암시적(暗示的)이며 정신적이라는 데서 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양회화가 사실을 추구해 온데 반해 동양회화는 사의(寫意)를 존중해 왔으며 서양회화는 인간 중심인 반면 동양회화는 자연에 치중하여 화면에 여백을 두는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동서미술의 장점의 결합을 추구하여 하나의 회화로서 함께 움직이려는 시도들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와 같이 조형세계의 차이는 점점 무너져 가는 동시에 자신의 영역은 더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물질주의극단에서 서구미학이 더 나아갈 수 있는 길 역시 극단에 닿아 있다고 본다. 이러한 입장에서의 대안은 다시 정신주의로 눈을 돌려 탐미할 수뿐이 없다고 한다면 동양미학은 지금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중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그 동양미학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암시와 여백의 미를 가장 많이 함축하고 있는 그림세계를 다시 주목해 볼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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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와 용구

종이(紙)

목면(木棉) 닥지(楮木) 마지(麻) 죽지(竹) 갈대(蘆) 등 의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여러 종류의 화선지들이 국산을 비롯하여 중국 대만 일본산 등 아주 다양하다. 먹을 잘 흡수하는 종이와 그렇지 못한 종이가 있는데 수묵화에서는 먹이 잘 흡수되는 종이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특히나 수묵화에서는 발묵효과가 그림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먹(墨)

먹은 송연묵(松煙墨)과 유연묵(油煙墨)이 있는데 자광(紫光) 묵광(墨光) 청광(靑光)의 빛깔로 상·중·하를 정한다. 가볍고 갈아도 소리가 나지 않는 먹이 좋다.

벼루(硯)

벼루는 중국의 단계연과(端溪硯)과 흡주연(翕州硯)을 제일로 꼽는다. 그러나 그것은 값이 비싸지만 중국수교이후 우리 나라에 많이 들어와 있어서 흔하게 만날 수 있어서 구하는데는 어렵지 않다. 또한 국내 벼루산지도 여러 곳이 있는데 그중 남포와 보령의 오석연(烏石硯)이 제일 좋다. 좋은 벼루는 물을 담아 놓아도 줄지 않으며 더구나 먹을 가는 소리가 나지 않고 입자가 곱게 잘 갈린다.

붓(筆)

노루나  양 이리 등 여러 가지 동물의 털로 만드는데 용도에 따라서 모양과 크기가 호수별로 다르다. 그 종류를 살펴보면 산수필·사군자필·채색필·평필 등이 회화에 쓰이고 있다. 그 외에도 방필·액필·연필·쇄모필·면상필 등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물그릇

붓을 빨 때 사용하는 도기로 된 큰 사발을 말하며 일면 필세라고도 한다. 도기로 된 하얀 그릇이 좋다.

접시

먹색의 농담을 조절하고 물감을 혼합하는데 필요하며 큰 것 2∼3개와 작은 것 5∼6개 정도가 있으면 된다.

채색(彩色)

안료의 종류는 접시에 갈아 쓰는 것, 용기에 담아져있는 것 ,튜브에 들어있는 것, 가루로 된 것과 석채(石彩)라는 입자가 굵고 발색이 좋은 물감 등이 있다.

계통별 색상을 보면 백색계통을 후분(胡粉), 적색계통은 연지(蓮池)·주(朱)·양혼(洋紅)·단(丹), 황색계통은 등황(橙黃)·황토(黃土), 청색계통은 군청(群靑)·남(藍), 녹색계통은 청록(靑綠)·백록(白綠), 갈색계통은 대자(代 )로 분류되고 있다.

                           

 위 그림에서 보여지고 있는 재료와 용구 이름

①②채색접시 ③분채 ④접시채색 ⑤봉채 ⑥튜부채색 ⑦물그릇 ⑧연적 ⑨벼루 ⑩먹 ⑪서진 ⑫붓발 ⑬붓 ⑭평필 ⑮화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