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방 강좌

文人畵의 本質 문인화의 시대적 배경 문인화의 일탈미
   
     
     
     
     

 
文人畵의 本質
 
그림 이론 1

 

 

동양회화의 역사적 맥락은 한자(漢字) 문화에서 시작되는 갑골문(甲骨文)의 고형태(古形態)인 그 형상성(形象性)과 연관을 맺고 있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문자(文字)의 시작이 그림의 형상에 그 원인을 두고 있기 때문에 서화동원(書畵仝源),서화동법(書畵同法) 또는 서화일치(書畵一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역사적으로 회화의 기원을 찾는데 필요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지 실제 실용의 유래에 있어서는 회화로서의 가치가 인정되기까지는 서예보다 훨씬 뒤늦은 후대의 일이다.

이렇게 서예술(書藝術) 보다는 많이 늦었다 하더라도 회화가 시작되는 이론적 성립기는B.C772-481 춘추에서 전국시대로 그 연원을 맞게 된다. 이와같이 그림의 시원은 오래되고 생활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공기(工技)에 속한 낮은 지위(地位)였으므로 발전이 더디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漢) 대에 와서도 유교가 농본(農本)사회를 이끌어 가는 생활문화 과정에서 그림의 목적은 유교적 교화주의에 예속되어 권선계악(勸善戒惡)의 도덕적인 감정을 고취하는데 활용되었을 뿐 귀족 계급인 사대부(士大夫)가(家)의 교양 과목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림의 관점이 사대부가에서 교양으로 크게 활용 되고 있던 시.서.예.악(詩.書.禮.樂) 등에도 그 효능을 높이는 것으로 인정되어 한(漢) 대 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사상의 기반이 조성되기에 이르렀으며, 그 회화의 변천도 여기서부터 새로운 양상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렇게 유교의 권계주의(權戒主義)로부터 벗어나려는 회화의 변화는 위.진(魏.晉) 남북조 시대에 이르러 불교의 세찬 바람을 타고 그 영양을 입어 회화의 자율적인 성장이 촉진되는 가운데 산수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회화문화의 본격적인 새로운 무대를 열어 나가게 된다. 또한 불교는 북방의 지배계급에 힘입어 현세의 무상과 내세의 정토(淨土)사상의 구현을 내세워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내려 갈 때 밀려나던 유교의 잔존세력은 무기력에 빠져 쇠퇴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밀려난 유교의 지배세력에게 반감이 있었던 토착민들의 지식세력들은 실추되어 가는 유교사상을 외면한 체 도가(道家)의 청담사상(淸談思想)에 뜻을 두게 된다.

한편 노장(老莊)사상은 춘추. 전국시대부터 북방의 유.묵(儒.墨)사상과 대립하면서 그 도전이 불가하였으므로 남방의 풍토 위에 인도(人道)사상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천도(天道)를 내세웠다 이러한 가운데 도가의 자연주의 사상은 실추된 유교의 출세주의적 현실 참여에 대한 기피 현상으로 나타나 은둔과 무관심을 낳은 반면에 개인주의. 쾌락주의 등에 젖어 산수(山水)에 숨어들어 자연을 탐닉하게 되었으며 시대가 불행할 수록 노장사상은 더욱 고양되어 갔다. .그러므로 한(漢) 대 이래 시작된 문인(지식인)들의 변천도 그동안 유교의 사대부가에서 도가의 청담사상의 자연애로 안주하는 변화를 맞게 된다.

이때부터 문인들은 더욱 유수(幽邃)한 맑은 산수에 심계(心契)하여 명사(冥思)한 유풍여운(流風餘韻)이 서로 어울려 나타나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정취를 구하는 문학풍조가 짙어갔다. 이와같이 자연미를 대상으로 하는 순수한 문학사상이 화가들로 하여금 자연을 재인식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해서 요산요수(樂山樂水)의 락도(樂道)를 취미의 대상으로 산수화의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게 되는데 사실상 이때부터 문인들이 산수화를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산수화의 시작이 문인화라는 말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문학 풍조의 정취를 담고 대체적으로 문인들이 함께 참여하여 탄생한 것이니 만큼 이때 그려지기 시작한 산수화가 곧 문인화의 시작이며 그 기원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문인화(산수화)의 등장은 감상자에 있어서도 자유로운 심미의 확대와 더불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주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의 시대적 요구는 통치 계급의 귀족사회에까지도 크게 영향을 미쳐 취미나 감상의 차원을 넘어서서 교양의 여기로 진전되었다 그러므로 의인유예(依仁遊藝)라는 범위에 들어가지 못했던 그림의 지위를 올려놓게 되었다.이로부터 회화는 진정한 예술로 승화되어 대우를 받게 되었으며 그 발전의 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초기수묵 산수화가 번쇄 하고 약간 유치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문인화는 보편적으로 육조시대의 남북 분종론을 들어 왕유(王維)를 그 조종으로 하여 연원을 삼는 까닭도 저미했던 초기 산수를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후대의 명나라 때 화론가인 동기창(董其昌)의 화설에 의한 것이지 미술사로서의 총체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에서 논한 바와 같이 동양회화의 문인화(산수화)가 탄생 하게 된 것은 위.진 시대로부터 이미 예고되고 있었다. 그때부터 문인의 변천도 제국의 흥망과 더불어 종교사상에 따라 유교에서 도교로 옮겨가는 추세 속에서 노장 철학의 문학화에 의한 시대적 영향은 자연을 대상으로 새로운 수묵화(水墨畵)가 탄생 한 것이며 그 연원을 종병(宗炳)의 화론으로 부터 문인화의 잡게 된 것이다.

 

 

 

 

 

문인화의 시대적 배경
그림 이론 2
 

문인(文人)이란 말은 언제부터 있었는지 그 연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문헌상에 나타나 있는 것을 참고해 보면, 고대 유교(儒敎) 경전(經典)인 시경(詩經)이나 서경(書經)에 문인이란 기록이 있다. 이것이 최초의 기록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보편적 견해다. 다음으로는 중국문화가 발전했던 서재(書齋)를 중심으로 그 배경을 찾아볼 수 있는데 서재의 다른 이름이 문방(文房)이며 이 문방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지칭하여 문인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아마 문인이라고 하는 어언(語言)의 근거가 앞에서 열거한 문서의 기록과 실제 말로 사용되었던 서재가 있었던 때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추론된다 이와 같이 유교경전의 기록에 나타나 있는 문인의 뜻을 살펴보면 문인은 문(文)과 덕(德)을 갖춘 지도층의 사람들을 지칭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문방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도 역시 시문(詩文)을 잘하는 문덕(文德)있는 사람들로서 지도층이란 점에서는 동일하다.

문인에 대한 이러한 유사한 맥락은 한(漢)대이래 유교적 교양을 가진 이들이 문방에 관한 일이거나 관료층을 형성하는 기반이 귀족계급인 사대부(士大夫)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족 또는 사대부가 문인의 자연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며 문인화의 시작도 사부화(士夫畵)로서 그 기반이 이루어 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어쨋던 문인이란 시문을 잘하는 사람을 말하지만 그 의미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그 기준도 달라졌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위.진(魏.晋)시대를 거처 오면서 문인들의 틀이 달라지게 된다. 위.진시대는 노장사상(老莊思想)이 일어나 점차 유교를 멀리하고 도가(道家)의 정려(靜慮)를 실천하여 청담(淸談)한 시정을 그린 문인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가기 시작했다.

육조(六朝)에 이르러서는 도연명(陶淵明) 같은 걸출한 인물이 전원의 한정담(閑情談)을 담담히 그려 두각을 드러내는 동시에 산수(山水)에 심계(心契) 한 문학 풍조가 나타난다. 진(晉)에 이르러서는 뛰어난 문장가가 많이 배출되었으며 그때부터 풍아(風雅)한 문인의 원류(源流)가 시작되는 새로운 전기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다 이와 같이 문인의 기준이 위 진 시대에는 정무(政務)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노장(老莊)의 도가사상(道家思想)에 잠겨 시주(詩酒), 음악(音樂), 서화(書畵), 박혁(博奕)<바둑,장기>을 즐기는 풍이 생겨 남조인(南朝人)의 이상으로 여겨져 문인정신(文人精神)의 새로운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수당(隨唐)시대에는 과거 시험에 시문(詩文)이 과해진대서 문운(文運)이 일어났고, 수(隨)대에서는 시문학이 노장의 자연주의를 그대로 유지하는 정도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당(唐)대로 넘어 와서는 육조시대의 산수에 마음이 깊이 개합한 문학정신이 그대로 승계되어 이백(李伯) 두보(杜甫) 맹호연(孟 ) 등 왕유(王維)를 비롯한 걸출한 문인들이 나타나 자연 중심이 되도록 무위 자연의 정신을 일깨우므로 해서 더욱 발전해 갔다. .. 당 말에 이르게 되면 남당(南唐)의 강남과 촉(蜀)의 사천에서 당 문화의 유풍이 잘 유지되고 있었으며 문인들이 배출되는 기반이 만들어 졌다. 이러한 기반은 시.서.화(詩.書.畵) 삼절과 더불어 문사(文事)를 하는 사람 등의 문인 묵객(墨客)이 많이 배출되는데 사대부 출신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 .그리고 당 말에서 짧은 오(五)대를 지나 송(宋)대에 이르는 동안 홍곡인(홍곡人)이라 부르는 형호(荊浩)는 성시(成市)를 등지고 장안의 태행산 홍곡에 은거하면서 무위자연의 이상을 그대로 보여준 문인이며 화가인 동시에 특히 회화에 대한 이론을 남겨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송 대가 되어서도 역시 도회지를 멀리하고 산수 좋은 곳에 은거하며 자연에 심계한 남조인의 이상을 연계하는 나머지 당 대의 왕유를 모범으로 삼던 임포(林포)라는 문인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후대에 전하는 유묵(遺墨)이 없기 때문에 그 이상을 묵희(墨戱)와 더불어 실현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인의 기반은 여전히 남조인의이상을 품은 가운데 조성되고 있었던 것이며 당대에서는 장조와 왕유를 모범으로 한 시 서 화 삼절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 한편 송 대에서는 유.불.선(儒.佛.仙) 삼교 사상을 묶어 신유학이라고 하는 송(宋)학의 새로운 유풍(流風)의 발현과 더불어 시문에 뛰어난 동파(東坡)의 출현으로 문인의 기풍은 유학 쪽으로 기우는 가운데 시 서 화가 문인의 조건에 이상이 되는 전기를 맞게 된다.

이와같이 시 서 화에 이상을 두고 동파와 함께 활동했던 두각을 나타낸 문인들은 구양수(歐陽脩) 황정견(黃庭堅) 미불(米 ) 문여가(文與可) 등이다. 이 외에도 삼절 사상에 기반을 둔 문인들은 많았으며 이러한 문인 묵휘의 전통은 금조(金朝)에 이식되어 원(元)대로 이어져 조맹부(趙孟부) 전선(錢선)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명(明) 대 에서는 문인들의 묵휘에 문인들의 이상을 높이기 위해 문인의 화(畵)라는 새로운 이름이 동기창(董其昌)의 화설을 중심으로 막시룡(莫시龍) 진계유(진계유)가 함께 제창하였다. 그리고 문인의 그림을 예가( 家). 전문 직업인의 그림을 행가(行家)라고 구별하는 논의가 심화된다. 청(淸) 대로 넘어와서는 정치적으로 만주족의 지배아래 특히 지식인들은 주체성을 잃은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렇게 된데는 농번 사회에서 산업 사회의 틀로 바꾸어 경제적 번영으로 사회의 안정을 가져와 민족감정의 명분이 현실론에 좌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학의 원론적인 형이상적(形以上的) 입장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형이하적(形以下的) 물질주의에 편승하여 지식인들의 현실 이반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속에서도 팔대산인(八大山人)이나 석도(石濤)같은 사람들은 왕족 출신으로 그 굴욕을 못이겨 세속을 등지고 산 속에 숨어 모습을 바꾸어 울분을 회화에 담거나 술로 광일 한 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유묵의 이상은 잠시 작열(灼熱) 하였으나 안정된 사회의 명분론으로 인해 영구히 살아지게 된다.

이러한 몰락은 농번 사회에서 잘 살든 지주들이나 사대부들도 마찬가지여서 산업 사회의 틀 속에서 입신을 위해 매문(賣文) 매화(賣畵)를 하는 문인들이 증가되기에 이른다. 그 전형이 후일 양주 팔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대부가를 중심으로 이루워 지고 있던 문인의 세계는 그 계급성이 서서히 무너지는 계기를 가져왔든 것이다. 지금까지 논 한 바에 의한 문인의 의미에 대한 그 배경은 서화일치 또는 시화일치 이론에 뒷받침된 시 서 화 삼절의 이상(理想)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고전에 놓인 문인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같이 풍류(風流)의 여운(餘韻)을 담고있는 일반 묵객(墨客)이나 시 서 화를 즐기는 관료의 기반을 둔 사대부의 문운(文運)을 품고있는 유형을 중심으로 한 문학자를 의미 한 것이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는 그 계급성이 무너지고 문인 정신의 의취만 남아서 시 서 화에 기준을 두고 있을 뿐이며 시가(詩歌) 휘곡(휘曲) 소설(小說)등을 주제로 하는 문학인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묵휘를 겸하는 경우에는 그들도 역시 문인의 조건에서 제외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에 있어서의 문인화에 대한 문인의 조건은 한정하지 않고 넓게 열려 있으나 문학화에 대한 정신을 고전에만 묶어둘 수 없는 고민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과제라 할 것이다.

 

 

 

 

 

문인화의 일탈미
그림 이론 3

문인화에 있어서의 정형화(定型化)된 틀은 시, 서, 화를 근간으로 하여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를 담아내는 화격(畵格)을 법(法)으로 삼는 일종의 회화양식을 의미한다. 일탈의 미는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완숙한 멋과 맛에 머물러 있는 풍류적 감 흥이 정형화된 공식적인 틀 속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틀 밖에서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자유스러움에 있다 할 것이다.이와 같이 농익은 멋이나 아름다움의 극치를 유발하는 상도(常道)의 근원은 정형화된 틀 속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묘리가 있다.

어떤 고정된 틀 속에서 벗어난다고 하 는 것은 해방과도 같은 것인데 그것은 곧 자연스러움과도 통하는 고정관념밖에 머무는 질서를 이탈한 것이 아니라 질서를 달관하여 얻은 특별한 자유임으로 일상 속의 별미와 같은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상도나 상궤에서 벗어나고, 일상성이나 정체성에서 벗어나고, 속박성이나 규격성에서 벗어나고, 진부한 관행이나 기계적인 인공에서 벗어난다고 하는 것은 흥분을 감출 수 없는 즐거운 쾌거에 해당하는 일이다.그러나 그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틀을 깨고 나와서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두고 과이 일탈이라 말할 수 있다. 동양회화에 나타난 옛 일화를 음미해 보면, 용을 그린 뒤에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려 넣었더니 그림 속의 용이 변화를 일으켜 홀연히 구름을 타고 승천하였다는 화룡점청(畵龍點 晴)의 이야기는 회화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어떤 것에 있어서나 완성도의 절정에 이르는 비유가 될 것이다.

문인화의 절정 또한 이와 같은 정형화된 틀 속에서 벗어나는 일인데 벗어남이라고 하는 것이 구태를 벗어버린 "화룡점청"하는 법처럼 큰 변화를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반란으로서의 변화는 법도 안에서 숙련으로서의 완숙한 기교와 깨어있는 작가정신이 만나서 틀을 뛰어 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기교를 넘어선 세계이기 때문에 선질(線質)의 무기교도 완전한 기교와 통하고 상 형(象形)에 있어서도 어리석은 듯 모자라 보이지만 완벽한 상형과 통해있다. 그러므로 문인 화의 세계는 보여지는 감상의 대상이기 때문에 어떤 틀에 규준하는 완벽한 모습이 바보스러움으로 위장해 있는 깊은 묘미가 문학과 만나는 정신세계의 결합이야말로 눈을 가진 공 감자의 패부를 흡이는 멋이 깃들어 있다 할 것이다.

이는 법도(法道)를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법도(法道)속에서 해방된 것이니 다시 말하면 자신이 스스로 법의 오랏줄에 묶여 있다가 법의 오라는 풀어내는 것으로서, 해방의 극치를 이루게 되는 문학화(文學畵)의 함수는 격(格)을 깨지 않는 무애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일탈의 본질은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고 때가 되면 석류가 익어 터지는 자연성의 완숙함 이겠지만, 듣는 세계인 전통음악에서도 엇모리 장단이라는 재미나는 세계가 있다. 엇모리의 "엇"이란 삐뚤어 지거나 어긋난 상태를 가르친 말이다. 이는 일상적인 장단과는 달리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어긋난 이색적인 장단을 말한다. 예를 들면 "강-약, 강-약"의 규칙적인 리듬을 "강-강-약-강"으로 바꾸어 변화하는 것을 엇모리 장단이라 한다.

필자는 잘 모르는 세계이지만 전문인들이 입을 빌리면 전통음악의 엇모리 장단은 그 속에 배어있는 예술적 속 멋이야말로 표현의 수단으로는 담을 수 없는 기막힌 일탈의 세계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시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엇시조가 이는데 45자의 정형시가 아니라 그 보다 사 설이 조금 많이 가미된 시조가 엇시조이다. 이 또한 정형시조에서 어긋난 시조로서 이도 일종의 이탈인 것이다. 이와 같이 "엇"이란 말은 우리네 멋의 본질과 멋의 속성을 두루 갖춘 일종의 일탈과 동의 어인 셈이다, 그러나 여기서 "엇"이라고 하는 장단이나 시조는 달관의 세계에서 자유자재하는 원숙미에서 빚어지는 멋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통상적으로 정형화된 규칙 속에서의 이탈인데도 괴리감을 느끼거나 격(格)이 깨지지 않고 오히려 말로 담을 수 없는 심금의 멋이 울어난 것이다.

문인화의 일탈도 마찬가지로서 예술의 입장에서처럼 경지에 이를 예인의 일필휘지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얻어지는 것은 어깃장스럽게 탈선하듯 분방한 필의(筆意)인데도 오히려 완숙한 멋이 넘치는 절정의 품격(品格)을 만나게 되는 득통의 경지와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기교의 기교 같은 넘어있는 세계 즉 "기교적인 완벽에의 무관심"과도 맥이 닿아 있는 세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해탈한 고승의 무애(無碍)의 경 계에 비유되는 것이다. 그러나 참 무애라고 하는 것은 법을 지키지 않고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법을 지키고도 걸림이 없는 자유르러 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탈은 법을 사다리를 삼아서 오른 자리이기 때문에 그 무애 또한 법의 달관을 통해서 얻은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까닭에 해탈의 무애는 마음 가는대로 해도 걸림이 없는 결코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경계라 할 것이다.

따라서 문인화의 절정을 보는 아름다운 멋을 유발하는 일탈의 세계도 마찬가지로 그 개념은 결코 완숙한 숙련을 전재로 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설익은 멋을 위한 억지 이탈이나 눈속임을 위한 의도적으로 정형을 벗어남이 아니라 그 세계에 달관하여 속에서 배어 나오는 원숙한 이탈이야말로 진정한 멋을 양조(釀造)해낸 효모(酵母)로서의 일탈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거치면서 충분히 필의 선질이 곰 삭아 농익은 완숙함이 아니라면 저마다 개성있는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만날 수 없을 터이고 도제의 스승 흉내내기에서 머물고 말뿐이다. 한마디로 일탈의 세계는 무애와 통하는 풍류성과 노련미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으며 새로운 창조의 동력을 이끄는 인연체라 할 것이다. 또한 여기서 얻어지는 것은 어깃장스럽게 탈선하듯 분방한 필의(筆意)인데도 오히려 난숙한 멋이 넘치는 절정의 품격(品格)을 만나게 되는 득통의 경지와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기교의 기교같은 넘어있는 세계 즉 [기교적인 완벽에의 무관심]과도 맥이 닿아있는 세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해탈한 고승의 무애의 경지에 비유되는 것이다. 그러나 참 무애라고 하는 것은 법을 지키지 않고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법을 지키고도 걸림이 없는 자유르러 움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탈을 법을 사다리를 삼아서 오른 자리이기 때문에 그 무애 또한 법의 달관을 통해서 얻은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까닭에 해탈의 무애는 마음 가는대로 해도 걸림이 없는 결코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경계라 할 것이다. 따라서 문인화의 절정을 보는 아름다운 멋을 유발하는 일탈의 세계도 마찬가지로 그 개념은 결코 완숙한 숙련을 전재로 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설익은 멋을 위한 억지 이탈이나 눈속임을 위한 의도적으로 정형을 벗어남이 아니라 그 세계에 달관하여 속에서 배어 나오는 원숙한 이탈이야말로 진정한 멋을 양조(釀造)해낸 효모(酵母)로서의 일탈이라 할 것이다. 한 노력을 거치면서 충분히 필의 선질이 곰 삭아 농익은 완숙함이 아니라면 저마다 개성있는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만날 수 없을 터이고 도제의 스승 흉내내기에서 머물고 말뿐이다. 한마디로 일탈의 세계는 무애와 통하는 풍류성과 노련미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으며 새로운 창조의 동력을 이끄는 인연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