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최열(미술평론가) 전통문화1987. 봄호

 
전통회화, 그 관념과 현실

 

  전통회화의 운명은 현대에 있어 어느 곳에 처해 있는가? 이러한 흥미로운 질문에 임하게 한 두 개의 전시회를 통해 관념이란 과제를 설정하고 거기에 따른 해명을 하고자 한다.

현대 전통의 운명

전통회화의 운명은 현대에 있어 어느 곳에 처해 있는가? 이러한 매우 흥미로운 질문에 임하게 한 두 가지 전시회로부터 관념과 현실이라는 대비되는 과제를 설정하고, 거기에 따른 해명을 하고자 한다. '운림산방(雲林山房) 3 대전'(롯데미술관:2.4 ~ 9)은 허유(許維: 1809~1893)와 그의 4남 허형(許瀅:1852~1931)그리고 그의 손자 허건(許建:1907~)으로 이어지는 한가문의 3대를 엮은 것이었고 '강행원(姜幸遠)작품전'(신세계미술관:2.10~15)은 70년대 후반 실경회화 운동의 물결을 개척해 나온 해방이후 세대(1947년생)의 개인전이었다 이 두 전시회가 어떤 의미에서든 동일한 계열의 유사점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이질적 맥락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운림산방의 거대한 역사적 전통이 처한 운명과 강행원이라는 한 작가로부터 찾아지는 새로운 생명력의 대비야말로 오늘의 전통회화가 나가고 있는 역사적 궤도를 밝혀주는 하나의 관건이라 하겠다.

조선 후기에 있어 전통회화는 대체적으로 탱화·무속화·민화, 그리고 사대부·화원의 문인화·풍속화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대부·화원의 그림으로 그 전통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화단의 정통주류로 사적 맥락을 지속시키고 있으며 특히 허씨 가문의 그것은 남종회화의 중핵을 이루고 있기에 이들을 검토한다는 것은 전통회화사의 중심적 과제를 해명한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정선 이래의 진경산수에 대한 보수적 예술이데올로기의 예각을 이루는 김정희의 제자요, 그 회화적 실현 혹은 회화적 완결을 이룩한 허유의 회화세계는 김정희의'투박한 기법' 즉 '억세고 거친 붓놀림'을 유효 적절하게 전체 화면에 채움으로써 '조형적 완결'을 보여주게 된다.
(졸고 「복고주의 位相 -19세기」『한국 근대사회미술론』 위상미술동인.1981 참조) 그것은 허유가 추사의 관념형을 조형적으로 완성한다는 의미와 같은 것인데 문인의 예술적 절정을 추사는 언제나 중국 고대의 한예(漢隸)등에서 찾았던 복고적 이상주의자였음을 주목함으로써 이해될 것이다.

그러한 세계관이 당시 몰락해 가는 왕공사대부들의 문예적 귀의처였으며 허유는 그러한 시대에 대표적인 문인화가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세계관을 꾸준히 역사적 물결을 타고 식민지의 패배적 화가들에게 이어짐으로써 일체의 전통회화는 복고적 관념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치닫게 된다. 물론 변관식·이상범 등의 실경이라는 전통 또한 갖게 되지만 그것도 또한 기계적 사실의 묘사 혹은 자연 경관의 표현 이상으로 나가지 못했다.
해방 이후 제도로써 전통화단 뿐만 아니라 운림산방처럼 각 지역 종가들의 이념적 배경으로 일체의 현실적 사고와 담을 쌓은 채 고전적 규범을 반추하면서 문인적 세계의 관념형을 옹호하였던 사실은 오늘의 전통회화가 처한 운명을 알려 주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 없는 관념이다.

미적 계기와 현실적 계기 일치

관념은 현실이 거세되었을 때 인간 삶의 늪으로 작용한다. 예술에 있어 서 관념만이 남은 앙상한 형태를 우리는 추상미술이라는 조형유희에서 보게 되지 않았던가. 현실은 언제나 예술의 굳건한 토대요, 예술을 풍부한 삶의 터전으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현실이란 인간역사의 전체이며 또한 구체적인 모습이고 역동적인 유기체적 질서를 뜻한다. 나아가 그것은 인간의 사회적 제관계이며 발전하는 역사적 전망으로 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이 예술을 살아 있는 형상으로 가능케 하며 인간의 제반 관념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실현시킨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예술에 있어서 현실적 계기로 부르거니와 그것은 미적 계기와 다른 것이 아니다. 미적 계기가 현실적 계기와 일치할 때 그 예술은 가장 풍부하고 살아 있는 생명력을 지니는 것이며 그것을 우리는 리얼리티라고 부른다. 그렇지 못할 때 예술은 인간 삶과 다른 것으로 가령 관념적인 사물로 타락하기에 이른다.

전통회화는 엄밀한 의미에서 말해 현실적 계기를 상실한지 오래인 것이다. 민간 신앙에 토대하는 전통회화로서 민속화 또는 무속화의 명맥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에 의해 멸절되었고 남은 것은 몰락한 문인·사대부의 복고적 아취(雅趣)에 의해 지속되던 문인·화원의 전통회화 뿐이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현실 삶을 미적인 것으로 옮겼던 현실적 계기로서의 회화전통을 유일하게 가졌던 민속화·무속화의 맥락이 끊기면서, 현실적 계기를 상실한 미적인 것으로서 문인화만이 남았다는 얘기가 된다.
'운림산방 3 대전'은 그러한 우리 미술사를 상징하는 것이다. 허백련(許白鍊)과 더불어 남도 문인화를 현대전통 화단에 확고하게 한 허건(許建)의 회화도 고스란히 상기한 맥락을 유지하고 있으며 어떤 당대적 삶의 계기도 찾아 볼 수 없다. 어쩌면 이러한 것을 찾으려는 노력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이경성이 허백련을 가리켜 우리시대의 마지막 남은 문인화가라고 했을 때 그것은 허건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말이다.

이미 동시대 속에서 그 역사와 인간의 삶이 요구하지 않는 예술로 전락해버린 이 운명은 빛을 잃은 복고적 취미의 장식물로 퇴락하게 되었고 슬픈 만가 속에서 회고의 옛 추억을 더듬을 뿐이다. 70년대 수묵화 운동이 자신의 생명력을 소생시키려는 몸부림으로 전통성을 부르짖으며 동양적 세계에 기대어 보았으나 한갓 기법의 실험으로 끝났던 사실은 그것이 여전히 복고적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강행원은 이러한 복고적 관념으로부터 벗어난 그러니까 전통회화 화가가운데 몇 안 되는 작가였다. 70년대 수묵화운동과 '3인행'그의 실경에 대한 탐구가 70년대 후반의 비슷한 시기에 김아영(金雅英)·강남미(康南美)등 '3인행'에 의해 참신한 시각이라는 찬사를 동등하게 받지는 못하였으나 당시의 실경을 중심으로 전개된 많지도 않은 전통화단의 맥락들이 그 이상으로 진전되지 못하였던 사실에 주목해 보면 이 작가의 진전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의 진전의 핵심을 언급하기 전에 우리가 앞에서 집요하게 살펴 본 관념형을 70년대 후반의 몇 작가들이 어떻게 돌파하려 했는지를 잠시 살펴보자. 3인행 뿐만 아니라 당시 젊은 작가들은' 소재의 선택'이라는 과제에 집중하면서 그 형식적 측면과 관련시켜 새로운 시도를 했다 당시 주제·재제·형식 등 거의가 관념형 일색이었던 현실에서 이러한 시도는 진보적 견해를 가진 이들에 의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일반에 의해서도 신선한 감각으로 다가섰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곧이어 전통회화의 문인화적 전통의 중압 속에서 창작자의 태도와 입장에 이르는 보다 본질적인 변혁에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오직 소재적 차원에 멈추게 되었던 것이다.

작가의 삶과 그 세계관을 규정짓는 예술적 태도가 변혁되지 않는 한 그러한 노력은 지엽적 변화 이상으로 나갈 수 없음을 실증한 채 마감되어 버린 것이다. 더욱이 완벽한 소재주의의 맥락으로 타락한 일련의 풍속적인 것이나 소위 관광산수라는 것 따위가 일정하게 자리를 잡게 외었다는 사실은 소재주의의 한계가 낳은 부산물쯤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졸렬한 변화로 믿어진다. 중요한 것은 그러므로 대상으로서의 소재가 문제가 아니라 형식과 내용을 장악하는 세계관 혹은 이념의 문제인 것이다. 관념형이라는 것도 형식이나 내용으로 표현되고 있으나 그 형식이나 그 내용이 그것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세계관이 관념적이냐 아니냐의 문제라는 말이다. 형식이나 내용도 그 세계관의 편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요, 그 세계관 관념형이라면 자연히 형식과 내용 또한 관념형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 점에서 강행원의 그것은 매우 현실적이다. 그는 그의 말대로 '안방에서 출발해 관광지·농촌·도시의 공장지대로 옮겨' 갔다. 그러니까 '하루 열두 시간 이상을 먼지 속에서 일한 대가가 고작 3천원 정도라는 주민의 말'을 듣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 그가 대상으로서 소재를 찾으러 다니던 가정에서 얻은 생생한 충격은 단순히 예술적 대상으로서 현실소재를 대하는 태도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하겠다 예술에 있어 그 현실적 계기가 따로 공식처럼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강행원의 작품전이 보여주는 것은 적어도 삶의 몸부림으로써 예술이 시작된다는 것, '문둥병보다 무섭다는 가난과 싸우는 사람들의 삶과 몸부림'이라는 것 등을 '난지도'를 통해 일정하게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술사에 끼친 강행원의 진전

미술사적 맥락에서 강행원이 진전시킨 점은 바로 그러한 부분이다. 즉 세계를 대하는 태도와 예술에 임하는 자세의 근본적 변화를 시사하는 중요한 진전이 그것이다. '도심이 보이는 지대'나 '난지도의 서설'등 모두가 변두리 풍경으로 그 변화의 면모를 발휘하는 작품들인데 더욱 중요한 것은 심미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현장으로서 해석되는 그 긴장감 가득한 화면처리에 있다. 운필의 역동성이 거친 느낌을 강화하면서 조형적인 심미안을 오히려 거부하는 듯한 인상은 그의 새로운 형식의 진전을 예감케 한다. 물론 매우 서정적인 전원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일련의 작품도 강행원의 한 부분이지만 그것은 관념형의 차원과는 거리가 멀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점이다. 현실적 정서와 내용을 주어진 전통의 형식으로부터 새롭게 표현해 나가면서 그 미적 계기와 현실적 계기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자기 예술행위의 주요한 과제로 삼고 있음은 동시대 전통화가들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다. 새로운 세대들에 의해 이러한 방향이 심화되기를 그치지 않고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작업에도 관심을 기울이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인간 삶의 구체적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가장 명백한 그리고 가장 정확한 길인 까닭이다. 실제로 이번에 출품된 '관세음 보살의 민중불교 역할도'가 그러한 징후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충분치는 않지만 우리는 운림산방 3대와 강행원을 통해 전통회화의 관념형과 함께 우리 시대의 진보적 전망을 보여주는 현실적 작가를 비교해 보았다. 현대 전통 회화사의 새로운 전망이 그렇게 쉽사리 주어질 수는 없으나 우리 시대에 있어 최선에 값하는 강행원의 세계는 그러므로 값진 것이요 더없이 즐거운 일이리라.                  나는 이 문제가 지난달의 전시회를 통해 대비되는 중요한 과제였다고 믿었던 까닭에 '1986년 문제작가 작품전; (서울 미술관:1.17~2.24)을 제쳐두게 되었는데 벌써 여섯 번째의 전통을 쌓은 이 전시회는 언제나 그 시기마다 인정되는 작가들을 미술비평가의 일정한 자기 전망체계 내에서 선정하여 주목케 해왔던 의미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