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원동석(미술평론가) 1983년 제3회개인전 서문

 
風土와 諷刺의 發見
 

 

윤산의 작가적 수업은 통상적인 그의 대학시절의 아카데믹한 과정에서 익혔거나 특별한 스승을 섬기면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흔히 공모전에 출품한 작가들의 성향을 보면 계보의 영향관계가 나타나는데, 그는 幸·不幸을 겪는다. 불행은 시속 적으로 계보를 타협 없이 밀 고가는 집념이다.

공모전의 경력으로 출세의 이정표를 삼는 화단 풍토에서 나는 그의 불행(?)을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좋은 작가는 현실적 실패를 통하여 예술의식을 다지고 분투하므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나의 최상의 작품은 언제나 미발표된 작품이라고 믿는 작가를 만나면 유쾌하다, 允山도 그런 사람이다.


윤산의 자산은 어릴 적에 익힌 서예와 불교학의 조예이며 풍부한 인생 경험이다, 한때 불문에 귀의하여 선대신 화를 통하여 생의 대답을 얻겠다는 소망으로 전국을 편력한 적도 있었다, 그의 그림은 이런 자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경그림이 유행하기 전에도 윤산은 편력의 체험에서 이미 체득하였던 것이며 어느 풍경의 현장이든 화선지 위에 직접 묵필로서 소묘하는 습관도 체질적이다. 자기가 보지 않는 세계는 꾸미지 않겠다는 점에서 그도 몸으로 밀고 가는 작가들에 속한다.


오늘날 실경주의가 너무나 자명한 미학처럼 되어 있으나, 무엇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 의미 추구가 반성 없이 유행되고 있어 오히려 진부해진 느낌이다. 가령 유명한 관광산수 만을 골라 다니면서 작품화하는 사실정신의 안이한 자세는 결별할 때가 온 것이다
윤산의 실경산수도 이런 흠이 없지 않으나 전체적으로 그의 소제는 농경과 도시 변두리 산야에 관심을 쏟았으면 최근의 그림에서는 도시 뒷골목·공장지대·산업공해로 오염된 자연에로 시선을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관심의 확대는 사실정신이 깊어지고 있는 과정의 단면이며 또한 서민적 삶에 대한 애정의 발로이다.

대체로 그의 그림기법은 자재로운 운필을 장기로 하는 묵색의 농감(濃感)이 특징이며 때로 그것을 자제하지 못할 때 구성상의 요설로 나타나는 결점을 지적 받으나, 매끄러운 세련성을 요구하는 비평의 각도를 달리하면, 질박하고 끈기스런 가락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서민적 감정과 부합되는 맥락이다, 小亭의 그림에서 항상 느낀 바지만, 윤산그림도 이 점을 항상 재고해 나간다면 그 잠재력은 받듯이 빛보리라고 믿는다,
윤산은 오늘날 한국화가 당면한 방법의 한계나 사회의식과 멀어진 관계의 갈등을 깊이 겪고 있다. 양화 쪽에서 일고 있는 모더니즘의 청산 및 현실 표현의 방향을 시대적으로 한국화는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갈등의 양면은 풍토 시리즈 그림들에서 원근법적 기법의 점검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역원근법을 도입한 감필법으로써 몇 점이 풍자그림을 과감히 시도하고 있다. 그가 몸담은 종교의 세속 성을 풍자한 것으로 그만큼 소망의 아픔이 컸던 충격 때문이다.                        ,이것은 주제의 현실 제기 이외에 다원적 시각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신선하며 현대감성을 포착한 개안이다, 전통의 현대화는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고전을 재해석함으로써 얼마든지 풍요한 양식을 개발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발견한 윤산의 그림에 나는 계속 기대를 건다.

1983 제 3회 개인전 서문에서


계간미술 시즌 하이라이트 논평


4번째 개인전을 가진 강행원은 여러 방면에서 작품발표를 부지런히 해온, 재능이 뛰어난 작가에 속한다, 불교에 입적한 경력에서부터 서예·전각의 터득이며 침체한 한국화를 개척하려는 다각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는 화단풍토서 이단자의 대우를 봐 왔던 셈이다, 그럼에도 그의 끈질긴 집념의 세계는 간명한 文人山水 이외에 도시 주변의 철거당한 서민의 삶이나 공해에 찌든 풍정에 대하여 애정과 현실의식을 고취하여 왔다.
또 수묵 기법으로서는 선택하기 힘든 주제를 택하여 의식 깊이 잠재한 불교계의 풍토까지도 풍자한 것은 한국화에서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점 출품한 중 <관세음보살 민중불교역활도>는 그의 새로운 면모를 과시하는 수작으로 생각된다, 하단의 폐품수집을 하고 있는 근로자의 모습과 상단의 관세음보살의 대비는 불교적인 삶의 방식을 상징함과 아울러 부처란 민중의 苦行속에 있다는 종교관을 함축하고 있다. 전통적 佛畵를 그 도식성에서 벗어나 현대 사회 속에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질문하면서, 작가는 표현의 확장을 과감히 시도한 것이다, 이런 의식의 開眼운 비록 단편적 시도일지라도 해묵은 누습을 떨쳐버리려는 변화라는 점에서 기대를 걸게 하다,

제4회 강행원전(2,10~15 신세계미술관)
계간미술 1987, 통권41호



계간미술기획특집

오늘의 한국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강행원의 그림은 전통적인 소재와 강렬한 현실 소재가 겹쳐 있으면, 전시의 성격에 따라 내용을 달리한다, 70년대에 작가로 출발한 그는 직접 붓으로 데생하는 사경 위주였으면, 이 같은 사경소재 중에서도 도시 변두리 야산이나 철거민지대의 생활 풍정은 그 당시만 하여도 흔치 않은 서민의식과 반미학적 도발 감정이 강하였다,

다소 거칠고 춤추는 듯하여 붓 맛이 깔끔하지 못한 화면구성이지만, 텁텁하고 구수한 서민의 소박함과 끈기를 보여주는 장기를 나타내고 있으며 어떤 소재도 거침이 없는 대담함과 참여열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타락한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작품들을 그가 체험한 불교 교양을 바탕으로 불교도상을 채용하여, 상투적인 가치 기준에 도전하고 있다.

계간미술 1988, 통권46

 

(문예진흥원에서 홈페이지 만들어 주었다. 그 서문에 실린 글이다)

 

윤산 강행원은 한국화단에서 보기 드물게 다방면에 재능이 뛰어난 작가이다. 그는 그림 이외에 한학과 서예에 능하고 시집을 몇 편 낸 시인이기도 하며 불교에 남달리 조예가 깊은 재가 수행자이기도 하다.

또한 사회의 불의를 보면 불같이 일어나 질타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이 시대의 지사, 양식인이다. 그 나이 급에 한국화를 한 작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민중미술 운동을 이끌었던 경력을 보더라도 그는 세속의 명예를 탐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예도를 추구한 작가이다. 그는 이 시대 70년대의 한국화에서 가장먼저 진경산수를 보여주는 사경의 선구였으며 또한 민화적 진채화나, 불화에도 파고들어 특히 불화를 패러디 하여 세속의 부패와 권력을 풍자한 민중그림을 민중운동시대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고전에도 게을리 하지 않는 작가로서 전통적 문인화 기법에 조예가 깊어 그 방면의 저술인 문인화론사의 미학을 출간한 보기 드문 박학한 화가이다. 또한 중앙 일간지 연재물 황석영, 김성동 등 대하소설의 원색 삽화를 맡아 그렸다. 이미 知天命을 넘어선 나이에 그가 도달해야 할 경지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 숙제를 뒤로 미루고 있는 학생 같은 삶을 산다고 할까?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그러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여 선구를 보여온 그의 예술의 진면모가 널리 깊이 알려지기를 바라고 기대 할 따름이다.

2000. 12. . 원 동 석(미술평론가, 목포대학교 교수/민족미술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