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김병종 (미술평론가) 공간 1987. 3

 
질박한 먹 맛으로 풀이한 서민적 삶과 자연

 

 

먹의 속성에는 고도의 함축미, 혹은 상징성 같은 사의적(寫意的) 세련미와 더불어 어수룩함, 혹은 푸근함 같은 질박한 맛의 이원성이 있다. 전자가 주로 학문적 역량으로 걸러진 높은 화학 수련이나 고도의 정신적 진경(進境)에 의해 체득되어지게 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체질과 감성에 의해 우러나올 수 있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자가 두뇌와 결부된 「인식적」측면이 두드러진다면, 후자는 情義的 요소와 결부된 「체질적」 측면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초기의 逸品畵가 주로 선승(禪僧)에 의해 신체적 운동량을 실어낸 一筆畵로서 쾌감을 수반하는 격정적 요소가 강하다가 후기에 가서 고도의 생략과 함축에 의해 상징적 문인화로 진행된 것을 보아도 그렇다.
재미있는 것은, 미술사적으로 격렬한 破墨이나 격정적 요소가 강한 먹그림 경향에 정통적 畵學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야성(野性)의 작가들이 종종 눈에 띈다는 사실이다. 종교적 禪畵類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성향의 작가들은 이어지고 있다.
40代초반의 이 작가 역시 미술대학 출신의 화가가 아니라 청년기를 불문에서 종교인의 신분으로 보내다가 화가로 변신한 작가이다. 그러한 데서 연유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 작품 세계에는 우선 그림에 대해 연연한 욕심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묘사에 있어서도 어떤 격식이나 틀이 없으며 수더분하고 서투른 듯 보여지는 것이 오히려 정감 있는 일회성의 회화인 것이다. 관념취를 떠나서 그가 살고 있는 이웃과 풍경들을 무욕하게 서술해 내는 것이 진솔하게 다가옴으로써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우리 곁에서 발견되어지는 작가인 것이다. 또한 흔히들 독학의 화가들이 남종 산수 계열에서 도제적 화풍을 보이고 있는데 반해 그는 이채롭게도 시작을 현실에 그것도 저변의 삶 쪽에 두는 패기를 보이고 있다.
「서울의 하늘 아래」,「철거지대」,「난지도 서설」,「대교가 보이는 풍경」등 저변과 변두리의 삶을 서민적 감성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어떤 분노나 고발에의 거친 숨결대신 차분한 서정성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格」이나 「古法」에 사로잡힘이 없는 솔직함, 야단스럽지 않은 시선과 조용한 호흡으로 그가 바라보는 세계를 담백한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컨대 세기(細技)가 배제된 묘사, 억제된 설채 효과 등의 서민적 소박함의 분위기 연출이 그의 독특한 점이다. 그러나 이따금 투박하고 거칠게 느껴지는 작위성이 드러나 미완의 문제성을 남겨주기도 한다.
우리 모두의 원형적 고향의식을 일깨우는 포근한 산야(山野), 찰필(擦筆)의 표현 주의적 강직함에 의한 수목과 판잣집들, 은적입형 취상불혹(隱迹立形, 取象不惑)의 의지가 느껴지는 해학적 인물의 무구한 표현, 혹은 전체로서 야취의 골격의 선 작품의 굳건함에도 이따금 위악적(僞惡的) 용묵 운필이 드러나는 것을 절조하는 일이야말로 그에게 있어서 새로운 하나의 과제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러나 감각의 알맹이를 의식한 그의 먹그림에서 소음과 분노의 허장성세 없이 차분한 서정성으로 소외된 삶을 풀어나가는 아름다운 성실성과, 겉도는 도회적 삶과 그 삶이 담기는 도회적 정경을 또 하나의 현대 산수풍으로 제시하는 저력이 보여 호감이 간다.
먹의 特質, 特長에만 종속되어 시위하거나 반대로 얽매이기 쉬운 사경적 수묵화 사조의 인습성을 벗어나서 사경자체의 그러한 속성을 초극하려는 의지, 중국풍의 정형성을 떠나 묘하게도 졸(拙)하고 서글프고 미완(未完)적인 우리네 환경과 풍토를 긍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어리석은 듯한 붓질과 질박한 운묵(運墨)은 세련되지 않고도 아름다웠던 소정 변관식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고 그만큼 우리의 삶과 밀착되어 있는 것이라 느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