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염  무  웅 (문학평론가)

      

 

  회화의 조형성과 시의 내면성 

 

 

내가 곁눈질로나마 그림의 세계를 처음 접해본 것은 60년대 말 김윤수, 김지하 , 이성부, 최민 등을 통해서였다. 시인이기도 하고 미술평론가 이기도 한 그들과 가깝게 어울려 지내면서 그들 주위의 젊은 화가들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 그들의 관심의 방향에 따라 우리화단의 상황을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70년대 말 까지 나는 『창비』를 거점으로 하는 문학 활동에만 정신이 팔려서 전시회 같은 데엔 별로 찾아가지 못했다. 더욱이 80년대 초 대구로 거처를 옮기면서부터 화가들을 만나는 일도 아주 뜸 해지게 되었다. 하긴 그 무렵 최민, 오윤 등을 중심으로 ‘현실과 발언’ 동인이 결성되어 미술운동의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고 83년인가 ‘현발’ 동인전이 대구에서 열려, 나도 거기 가본기억이 있다. 어떻든 그러는 동안 유신과 5공의 정치적 암흑을 뚫고 마침내 유월항쟁이 폭발하였으며, 30년 군사독재는 드디어 시민적 저항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그 해방적 환희의 공간 속에서 탄생한 것이 민주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예술인들의 대중적 조직 즉 민예총이었다. 나도 뒤 늦게나만 여기에 참여 하였는데, 그런 연유로 80년대 말경 많은 화가 ․ 음악가 ․ 영화인 ․ 문화운동가들을 알게 되었다. 군소리가 길어졌지만, 내가 윤산 강행원 화백과 인사를 나눈 것도 그런 와중에서였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실상 강행원의 그림을 그렇게 많이 보지 못했다. 연보에 의하면 그는 1977년의 ‘윤산한국화사생전’을 시발로 거의 3년마다 개인전을 열었는데, 불행이도 나는 그 전시회에 한번도 가지 못했다. 단지 그림마당 ‘민’ 같은데서 열린 기획전내지 합동 전시에서 띄엄띄엄 그의 작품들을 보아 왔을 뿐이다. 그러니 나로 서는 92년의 동산방화랑의 초대전에서 처음으로 그의 세계를 일별한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보았다고 하더라도 거의 색치(色痴)나 다름없는 내가 그의 그림에 대해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분수에 넘치는 노릇이다.

그런데 그 동산방 개인전의 화집을 뒤늦게 펼쳐 되풀이 보면서, 그리고 거기 함께 수록된 윤범모, 이성부, 최열, 오광수 원동석, 이구열 같은 분들의 강행원에 대한 글들을 읽으면서 내 나름으로 이 화가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예술의 길을 걸어왔는지 잡히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짐작컨대 강행원의 인생과 예술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사실은 그가 일찍이 사촌 형인 청화 큰 스님의 영향으로 불교에 관심을 가졌고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스스로 출가 입산하여 몇 해 동안 승려생활을 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뛰어 났으나 미술대학 같은 정통적 제도 바깥에서 거의 독학으로 회화의 기법을 터득 했다는 것이다.

윤범모씨가 강행원의 그림에 대하여 “ 파격의 아름다음” 이라고 지적했던 측면도 혼자서 일구어 낸 두드러진 개성적 세계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강행원의 그림은 한편으로 불교적 내공의 형상적 표현이고 다른 한편은 획일화 되어가는 미술가들 속에서 양식화된 회화 문법으로부터의 거부이다. 동산방 화집을 새삼 펼쳐보면서 내가 놀란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왕성하기 짝이 없는 생산성이고 또 그 관심의 다방면성이다. 89년부터 92년 초까지 불과 3년여에 걸쳐 간헐적으로 그 많은 그룹 및 초대전에 발표작 말고도 화집에 수록한 신작이 80여점의 분량이다. 글이든 그림이든 생산이 많다고 덮어놓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것이 어떤 하나의 지표 즉 예술적 의욕의 강도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인 고은씨가 그렇듯이 강행원의 경우에도 단지 양적 풍성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88년 이전의 강행원의 미술세계는 거의 나는바가 없지만, 동산방 화집 한권에 수록된 것만 보더라도 그의 회화적 시각은 다채로운 편이다. 가령, 「들녘의 농막」이나 「진도대교」「설향」 1,2,3,처럼 자연의 경치를 대상으로 서정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그 연장선에서 중국의 풍광내지 백두산 천지를 그린 작품들이 있으며, 유명한 난지도 연작을 비롯하여「휴식」「노점상할머니」「옥수동풍정」「안양천의 빈민가」 「선착장의 하루」처럼 서민들의 고단한 생활현실에 주목하는 동시에 그러한 관심의 역사적 확장을 보여주는「동진강은 흐른다.」「백산에 모여들다」같은 작품들이 있다.

「여름날의 정진」「관세음보살의 민중불교 역할도」는 그가 여전히 불교적 깨달음의 성취를 통해 현실의 고통을 넘어서고자 꿈꾸고 있음을 암시하며, 탈과 무속을 소재로 그가 펼치는 화려한 색채효과 또한 전통사상에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그의 오랜 집념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강행원의 회화세계의 소재와 주제 또는 관심의 방향이 이렇게 폭이 넓고 또 의욕적으로 발산되고 있으면서도 (나의 문외환적 관찰에 의한다면) 거기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그것을 한국성 즉 민화적인 정신의 표현이라고 부르고 싶다. 민화란 민중적 내지 민속적 회화를 가리키는 말일 터인데, 정통 문인화의 관념성․ 추상성․ 귀족성․ 암시성과는 달리 그것을 소박성․ 직접성 ․민중성․ 생활상을 특징으로 한 것이다.

한마디로 민화란 민중들의 생활 현실에 대한 민중자신의 회화적 발언이라 할 것이다. 강행원 그림의 색채의 강열성은 어쩌면 아카데미즘의 훈련 과정 밖에서 얻어진 야성 그 자체의 폭발일지도 모른다. 거듭 말하거니와 내가 그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강행원의 회화세계에 대해 약간의 해석을 시도 한 것은 다름 아니라 그가 시를 썼기 때문인데, 예술장르들 사이를 넘나드는 일이 흔치 않은(뿐만 아니라 시인이 소설을 쓰거나 평론가가 시를 쓰는 일도 일반화 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풍토에서 그가 왜 새삼 시를 쓰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의 그림과 시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한 가지 우선 눈에 띄는 사실은 그가 그림에서 보다 시에서는 불자(佛子)의 모습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림은 캔버스라는 물리적 평면위에 가시적 형상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물질적 제약성 또는 일종의 강요된 객관성을 가진다. 물론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서도 같은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언어는 다른 한편으로 내면적이고 심정적인 어떤 마음의 움직임을 그 미묘한 부분까지 표현하는 데에 좀더 유효하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회화보다 훨씬 더 사적(私的)일 수 있는 가능성 또는 위험성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짐작컨대 강행원은 회화의 조형적 객관성안에 가둘 수 없는 내적 욕구를 위해 새로운 매체를 필요로 한 것 같다. 다음 작품을 읽어보자,

어둠을 삼킨 해/ 황홀히 여는 산 빛/ 탐욕으로 달아오른 / 물거품 같은 꿈/ 허상의 그늘 속에 / 희미한 그림자 「허상」

첫 두 행은 다분히 회화적이다. 그의 그림들이 그러하듯이 이 싯귀에서의 빛과 어둠의 선렬한 대조는 언어적 음영에 의한 암시보다 시각적 표현의 집대성을 겨냥한다. 그러나 정작 그가 나타내고 싶은 것은 어떤 대상이 아니라 바로 이 삶의 현실, 탐욕과 미망에 가득 찬 이 현실세계의 허구성이다. 이 시에서 강행원의 불교적 세계관을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대상에 대한 회화적 접근으로부터 언어적 접근으로의 전의의 필요성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시는 단순히 “현상의 세계란 헛된 것이다.” 라는 발언을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발언의 내적 절실성이 그 절실성에 걸 맞는 고유한 언어로 농축될 때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강행원의 시는 회화적 요소를 어느 정도 그대로 간직한 채 때로는 선적(禪的) 투명성에 도달하고 있다.

서릿발에 시린 얼굴 / 햇살 다투는 환한 웃음/ 가을을 지키는 곧은 절개/ 그 향기 바람에 실려 / 쪽빛하늘 멀리 맑다 「국화(菊花)」

이 작품을 시로서 살아나게 하는 것은 마지막의 “멀리 맑다” 는 표현이다. 실로 멀리 맑은 하늘은 지극히 회화적인 이미지 이면서도(즉 화가적 발상을 인정하게 하면서도) 회화적 수단으로 형상하기 어려운 어떤 고도의 정신적 상태에 대응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 멀리 맑다”는 표현은 강행원의 화사한 색체주의와 거리가 먼, 또는 그 의 회화적 수단에 좀체 포착되지 않는 내면성의 깊이를 말해준다.

홍수처럼 밀리는 / 너무 바쁜 /오늘의 물결들 /함께 파도가 되어/ 밀려 왔다가/ 다시 부서지는 / 둥지의 꿈/ 파도에 씻기는 / 모래 무리로 / 무력하게 밀려다니며/ 몸은 땅을 뒹굴면서 / 생각은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저별을 향해 있으니... 「무력한 희망」

이런 작품에 오면 드디어 강행원은 화가적 발상을 떠나 자신을 삶을 시적으로 관조한다. 몸은 어쩔 수 없이 이 예토(穢土)에 묶여 있으되 정신은 이 예토로부터의 초월을 꿈꾸는 상황, 그것은 강행원의 불자적 전력을 다시 한번 말해주는 동시에 어쩌면 이 사바세계를 견디며 진리의 길을 찾고자 하는 모든 구도자들의 갈망을 대변하는 것일 터이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외람된 언급이 기는 하지만, 오늘날 우리화단에서 강행원은 오직 자기의 이름으로 각인된 독특한 화풍을 이루어 냈다. 이것은 그의 뛰어난 화재(畵才)와 끝없는 모색의 희화적 고행(苦行)이 만남으로써 이룩한 결실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 즉 시의 세계에 한발을 들여 놓았다.

그림이 한 인간의 필생의 노력을 요구 하듯이 시 또한 한 인간의 혼신의 집중을 요구한다. 그의 시가 외도(外道) 또는 여기(餘技)일지, 아니면 한 새로운 시인의 탄생으로 이어질지 그것은 아무도 단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쉽고 만만한 사업이란 없다는 것인데, 물론 그렇기 때문에 한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다는 것은 만인의 존경에 값하는 위업이라 할 만 하다. 따라서 시인 강행원에 대한 주위의 관심은 특별한 것이어서 그의 앞으로의 정진공력(精進公力)을 지켜보는 것이 우리의 예의 일 것이다.

1998. 5. . 염무웅 (문학평론가 영남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