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원동석(교수, 미술평론가)       

      

 

[서평]

한국문인화/ 강행원 저

그림에 새긴 선비의 정신-

 

 

 

 

‘미술세계’ 잡지가 고유섭의 탄신 100년을 기념하여 우리의 미학과 미술사학의 현주소를 돌아보는 특집을 꾸미었다.[ 2005/8월호] 우선 특집의 주제부터가 읽기도 전에 반가웠다.

내 자신이 우리미술사학의 입문시절부터 고유섭의 저술과 야나기의 책을 읽으면서 출발하였고 대학 강단에 서서 퇴임할 때까지 수십 년간 줄 곳 미학과 미술사학을 가르쳤고 틈나는 대로 이 분야의 관련 문헌을 수집하고 읽었다. 그리고 이 특집을 읽은 독후감은 우리의 미술사학, 미학은 지금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왜 그러한가?

우선 우리 미술사학의 연구자들의 대부분이 고고미술학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들 고미술 실물 답사와 체험을 바탕으로 한 연구문헌은 항상 소중하다 . 그럼에도 사료적 가치 이상으로 예술적 통찰력과 상상력에 대하여 별로 내놓은 것이 없다.

고미술품에 대한 양식적 비교접근이나 고증적 근거 진술 이외에 현상 너머로 숨어있는 상상력의 원뿌리를 찾아내지 못한다. 그것은 민속학이나 신화학의 몫인데 이들의 학문 영역 밖에 있기 때문에 외면한다.

많은 한국미학자들이 해외에서 미학과 예술사를 연구, 터득하고 서양예술사를 풀어내는 탁견의 지식을 과시하고 있으나, 정작 우리예술을 해독하는데 그쪽에서 배운 서양식 사고 개념으로 잣대를 맞추는데 둥근 구멍에 네모난 막대기를 꽂는 식이다.

우리는 아직도 서양적 근대교육으로부터 학습 받아 왔고 그래서 관용화된 사고방식, 지식체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더욱 오늘의 문명화된 현실 인식의 패러다임 늪에 빠져 있기 때문에 우리 예술의 뿌리, 원초성을 찾는 시야가 막혀있다.

예술은 결코 지식의 총화가 아니다. 삶을 읽어내고 바라보는 상상력 그것을 드러내는 솜씨이며 표현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상력의 뿌리, 시원은 어디인가?

여기에 민속학적, 인류학적, 신화적 해석의 접근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우리미학을 정립한 것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고유섭의 공과는 문명대가 지적한 대로 뵐플린의 양식사적 방법론, 사회경제사적 방법, 리글의 정신사적 방법을 종합하면서 현장체험과 현물 분석을 통하여 한국미술의 특성을 기술한 공적이다.

다시 말해 다시 말해 서양적 방법론의 토대 위에서 쓴 것이지만, 인류학이나 신화적 방법, 구조주의적 통찰을 발휘하기에는 20세기 전반기 삶을 산, 나이 40세로 요절한 한계일 것이다.

고유섭의 영향은 미학이라기 보다 오늘날의 미술고고학의 중추를 이룬 원로세대들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 고고학적 성과는 미학적 토대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 미술사학의 두 가지 방향 뵐프린의 양식사적 방법과 리글의 정신사적 방법이 있다면 고유섭은 전자에 치우친 셈이며 오늘의 사가들도 이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자를 미학적으로 형식주의, 후자를 내용주의로 가름한데 미술사 흐름을 시대의 의상처럼 양식주의로 구별하여 설명하기 쉽다. 그러나 정신주의 측면에서 시대별 정신 찾기는 쉽지 않다. 정신세계를 두부모 자르듯이 명료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그림에서 사생주의가(形寫주의) 개인별,시대별 성취 특성을 양식주의라고 본다면 사의성 (以形傳神) 강조는 정신주의를 의미한다. 동양미술의 정수는 이점을 강조한다. 2011년 강행원 지음의 ‘한국문인화 -그림에 새긴 선비의 정신’표제어가 함축하고 있다. 나는 한국미술에 관련된 서적들을 구입해 놓고 끝까지 독파한 적이 없다. 중간에 던저버린다. 그러나 강행원의 이 책은 소설 읽듯이 단숨에 읽으면서 화가의 삶에 감정적 울림까지 왔다. 그러다 보니 전에 읽다가 팽개친 남농 허건저 ‘남종회화사’를 찾게 되었는데 서로 비교해 보기 위해서이다.

이책의 출간한 해는 1994년이며 1987년 남농 별세 후에 간행된 유작이다. 옮긴이는 도미자(부산여대 강사) 젊은 분 같은데 출생년도를 밝히지 않아 나이를 알기 힘들다. 옮긴이의 설명에 따르면 1950년 6월 남농43세에 펜글씨의 행서로 써진 육필원고를,때로 중복된 문장을 바로 잡아 정리한 것이라 한다. 그 시기가 6.25 전쟁발발로 전국이 혼란기에 빠진 시기인데 이론공부에 눈을 돌리고 자신의 가계와 작가적 편력에 대한 자전적 내력을 적고 있다.( 남농의 육필 원고를 行書로 본 것은 옮긴이의 잘못 판독이다)

‘이책의 구성은 1장부터 8장까지 중국 회화사를 다루면서 유명화가들의 시대배경과 작품 위주로 서술하였고 9장부터는 필법과 준법, 문방사우와 낙관등,--특히 20장에는 설색과 제조법 우리 물감을 사용한 제조법 이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화력을 소상히 밝힘으로써 자서전적 요소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하여서는 허유가 쓴 ’몽연록‘ 즉 ’소치실록‘을 연상시킨다 ’고 옮긴이의 후기에 쓰여있다. 책을 집필한 허건 43세 무렵은 ’세필산수‘의 남농적 양식을 정립하면서 조부 허소치로부터 받은 남화정신과 전국 각지로 사생하면서 얻은 사실주의 묘법은 북화까지 섭력하여 남도화단의 정상에 위치한다. 비록 서법에 통달하지 못하였으나 문인화 작가답게 이론서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점에서 근대한국화 거장들이 생각도 못한 이론 측면에서 독보적이다.

다만 유감스러운 점은 중국 남종화가들의 계보를 서술한 부분에서 원전의 출처를 밝히지 못한다. 당시 대만에서 미술서적을 구입하기 힘든 관계로 일본판 서적에서 차용하면서 실토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그의 회화정신은 ‘비록 남화는 중국에서 왔어도 조선의 남화를 그리는 것이며 유화는 서구에서 건너왔지만 조선의 유화를 그리는 것이다’ 고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한 점에서 후학의 사표가 된다. 그의 가계와 소상한 화력은 이 방면 연구자에게 더없는 참고자료이

다. 나자신은 허건론 3편, 그의 동생 허림론 1편을 쓴 적이 있다. 남농의 일대기는 소치의 화맥을 이었으나 가난 극복이 힘들었고 개인적으로 다리 절단의 불운을 딛고 일어서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음양으로 고향의 예술인을 돕는 후원자 면목을 보여주는 점이라 할 것이다. 출세하면 모두 서울로 몰리는 판에 남농은 목포를 끝까지 지켜낸다 진도의 유적지 복원도 그 일환이다.

어찌보면 무안 망운 출신의 강행원이 다룬 조선조 선비 정신은 근대의 남농과 맥락이 닿아있다고 할까. 윤산이 책의 서문에서 강조한 ‘문인화의 정신주의 미학’과 남농이 ‘ 모든 회화는 현상의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미를 초월한 神氣 ,정신세계, 유현의 미적표현에 있다.’ 는 말과 상통한다.

‘한국문인화’의 목차를 살펴보면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과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 항목이 빠저있어 으아스럽게 생각하기 쉽다. 단원은 도화서 화원이므로 제외한다고 치고 겸재산수라면 미술연구자들이 약방에 감초다루 듯이 취급하지 않는 논문이 없는데 알고보니 진경의 개척자 공재 윤두서 한사람이면 족하다고 생각한 것인가, 혹은 너무 과찬에 대한 반발 심리인가, 스스로 밝히지 않으니 알길이 없다 주희 성리학 원리론에 심취하여 ‘소중화주의’를 자처한 노론의 송시열 학풍보다 애민의 ‘경세치용’ ‘실사구시’ 학풍을 옹호하는 선비화가로 그는 다산 정약용을 높이 평가한 반면에 추사 김정희에 대해서는 종래없는 서법창조로 그의 사군자까지 최고라고 보는 중앙화단의 평가에 대하여 추사는 모화사상에 젖은 보수적 선비라고 비판한다. 사실 나역시 추사의 ‘세한도’는 중국화보에 나온 소재를 추사적 필체로 임모한 독창성없는 모화사상의 반영이다고 본다. 다만 권력의 실리에 추종하지 않는 세태에 초연한 자태를 추사에게서 읽지만, 실학적인 민본에 기초하지 않는다. 추사의 복고풍 바람이 근대화풍의 발전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였다는 그의 논지에 십분 공감한다.

우리에게 우리말 가사와 한글이 있어도 선비들이 한글 서법발전에 힘쓴 적이 없으며 아녀자의 궁서체로 체면 세우는 궁벽함이 없지 않다

한자서예라는 것이 한자문화권에 갇혀있는 것을 상징하는 반큼 우리정신을 찾는데 그림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이점 서양화 도입이 참신한 것 같으면서‘ 소꼬리에 붙어다니는 파리’의 형상이다.정신은 남이 거저 주지 않는다. 서양화는 외형적 양식이므로 쉽게 모방하고 따라잡는다. 그것이 양식사론의 한계이다.

윤산은 책의 말미에 이르러 조선중기선비화가들이 이룩한 찬란한 업적이 말기에 퇴조하는 현상을 열변하듯이 토해낸다. 그 첫째 원인은 중국사대를 향한 보수회귀‘ ’과 ‘화원들의 신분상승 욕구’ 등이다 ‘보수화회귀의 원인은 실질걱으로 중인화원이 많았으니 반상이 무너지는 말기적 해체기에 반가의 사대부 문화를 호응하게된 양면성이 있었다. 신분상승의 욕구를 사대부문화로 취해보자는 뜻이 숨어있엉던 것이다.’ 그렇다면 서민의 민본적 욕구는 어느 계층이 주도한 것일가? 농민인가, 본질적으로 농민이 그린 농민의 그림은 없다. 민중은 먹고 살기도 힘드므로 구매력도 없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더욱 실리추구가 주름잡는 세상에서는 그린다는 것은 ‘無償’행위와 같다. 지식인 화가는 ‘받음’이 없이민중을 향한 짝사랑을 한다는 소리이다. 어찌 ‘정신세계가’ 물질로 ‘되갚음을 원하는가? 난제이다

끝으로 윤산의 문체는 한자어에 익숙한 세대다. 한글세대가 읽기 어려웁다. 점차 한글 전용의 인구가 늘고 있으니 우리가 풀어야할 난제이다.

  20013. 08. . 원 동 석(미술평론가, 목포대학교 교수)